제목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녀 등록일 2015.02.17 15:12
글쓴이 박OO 조회 1031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울모드로 들어간 그녀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약을 지어먹겠다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안다.

우울이 얼마나 낱낱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급하게 심상치료를 예약하고 그녀에게 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30대에 정신과 의사가 안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 신경과를 다닌 경력이 있다.

그 때 심리상담도 병행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성실하게 상담에 임했고 그 결과 다 나았다고 진단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발병한 것은 치료를 마치고 2년이 지난 후였다.

그녀는 '괜찮을거야'를 되뇌이면서 습관처럼 약을 먹으며 아주 쾌활하게 지냈다.

그러나 오늘 그녀가 나에게 S.O.S를 요청한 것이다.

 

그녀는 더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고 그동안은 가상치료였다며 전화에 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눈물이 솟구쳤다.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잘 알기에 그녀의 심상치료에 동행하기 위해 평택에서 서울로 향했다.

 

상담소에서 만난 그녀는 모자를 눌러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창백하게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참 힘겨워보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련된 그녀의 태도는 변함이 없어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완벽하게 행동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난 늘 약간씩 불안했다.

너무 완벽한 모습에서 불안을 느낀 것은 강하게 보이는 그녀의 감성이 사실은 섬세하고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상담에 들어갔다.

상담에 임하는 그녀는 상담사 앞에서 세련된 화법으로 자신의 상태를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듯 말했다.

강박에 조울증이라는 진단명과 더불어 그 근거를 남 얘기하듯 하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에는 이골이 났다는 태도이다.

 

그리고 최박사의 인도로 심상에 들어갔다.

그녀는 눈을 감을채 진술을 시작했다.

별로 태도의 변화가 없었다.

매우 논리적이고 설명적인 진술이 이어졌다.

그녀는 눈을 감은 것에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이래가지고는 치료가 안될텐데.... 라는 불안이 스쳤다.)

 

그러나 최박사는 그녀의 그런 태도에 굴하지 않고 눈을 계속 감은 상태에서 그녀의 진술 끝에 나온 단어인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 때 그녀는 침묵했다.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완벽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유년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그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숨조차 쉬지 못하는 꺽꺽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옆 사람까지 그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공포와 경악으로 얼룩진 눈물 사이 사이 그녀의 어린 시절 고통의 현장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가족사에서 누구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그 때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등등

최박사의 인도로 그녀가 쏟아낸 내용은 가슴을 시리게 만들고도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친부모에게 학대당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는 강박에 조울증이라는 딱지까지 달고 힘겹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박사는 그녀에게 그런 진단명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병의 근원으로 여행하게 만들고 그 곳에서 그녀의 고통을 만나게 했다.

 

그녀가 심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개운하다고 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제가 이제 솔직해져도 될까요?"

"아프면 아픈대로 내버려둬도 될까요?" "약을 먹지 않아도 될까요?"

 

최박사는 말했다. "그게 심상치료가 바라는 태도입니다. 내 안의 끓어오르는 것들을 솥뚜껑을 닫아 힘주어 누르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뚜껑을 열어 다 나오게 한 뒤 깨끗해진 자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녀는 1회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말했다.

"언니 내가 받아본 어떤 심리치료하고도 달라. 너무 파워있어. 이제 나도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