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두번째 심상치료 등록일 2015.02.17 15:07
글쓴이 강OO 조회 857


심상치료 둘째 날이다. 첫번의 치료가 이루어지고 3일만에 다시 치료에 들어갔다.

 

지난 시간에 응급 상황에 불을 끈후, 더 깊이 뻗은 마음의 길을 따라, 

이젠 조금더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사람들과, 사물, 풍경, 지난 날의 기억들과 만난다. 

 

첫번째 치료 이후에 "어떠세요?"라는 질문, 난 이 질문이 당혹스럽다. 

내가 어떤지 그 상태를 잘 말할 수 있던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더욱이 한 달 전에 연인이라고 믿었던 이와의 이별 뒤에 난 내가 어떤지 잘 모른다. 

이제 조금 가라앉기는 했지만, 불이 난 집에서 기어나온 이가 자신이 지금 어떤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이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낙인찍힌 화살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나간 미래'라는 말도 있는지도 모른다.

 

치료 받기 이전에도, 내 머리 속엔 늘 신화의 원형과도 같이 내 삶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살고 있다. 

이제 그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 산듯한, 가슴을 토해내지 못하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파와 여린 어린아이, 

그리고 살아있는 가족보다도 늘 우리와 함께 있었던 죽은 큰 오빠, 

어린 시절, 한번은 그 속에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우물, 

꼭 한번은 순례하고 싶은 산티아고 평원 길과 티벳 고원, 너른 바다와 들, 

이들 위에서 내 마음이 간다. 

여전히 분노하고 이들을 보고, 외로워하고, 다른 이들의 죽음을 보고.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어린 시절, 난 시골 언덕 위에 오른 꽃상여를 보았다. 

그리고 마을에 큰 나무 옆에 있었던 우물을 기억한다. 

꽃상여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원색의 화려한 빛깔을 보면, 난 아주 원색적인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그를 통해 바라본 '죽음'은 그저 또다른 하나의 세계였다. 

우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난 그 속에 한 번 꼭 들어가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어쩌면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에 생각하고 체험한 죽음은 결코 무서운 세계가 아니었다.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른 불을 보며, 저렇게 타들어가는 것이 있어 내가 밥을 먹는구나 했던 생각도 난다. 

그 위에 올라앉아 있던 도둑고양이(지금의 들고양이)의 퀭한 눈빛 역시 내겐 또다른 세상이었고,

그들은 내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상을 산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

  

치료를 마치고 어쩌면 난 남다른 '(sex)'에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성에 대한 호감이나 관심이 있었지만, 

세상의 다른 이들이 성과 결혼 등에 열중하는 시절에 

이러한 일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문득 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그것을 짧게 경험하고 남들이 오랜 세월 당연한 듯이 겪는 이별과 실연을 지금에서야 맛보고 성장통을 겪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 내게 있어 성은 나의 영적인 영역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었다.

 

나의 육체적인 질병 역시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10년 이상을 자궁 질환을 갖고 살았다내 나름의 생명을 잉태하려는 욕구를 끊임없이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이 비록 결혼과 출산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한 여성이자,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욕구가 내면 깊숙히 존재했다. 

그것이 거부되는 것이 현실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이성과의 사이에서 드러나자,

온 몸을 다해 그에 저항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